아취헌(我取軒)

아취(我取)는 "나의 뜻으로 가려서 취한다"는 말입니다.

중국 강소성 소주시내에 가면 창랑정이란 정원이 있는데, 청나라 때, 그 정원 옆에 살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집 작은 별당에 아취헌이란 현판을 달아 놓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가 부생육기(浮生六記, 沈復)라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인데, 마침 그 창랑정에 들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곳에 갔다가 아취헌을 찾으려 애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我取라는 것에 대하여...

지금부터 20여년 전, 고등학교 때 한문을 담당하시던 담임선생님께서 그 유명한 굴원의 어부사(漁父辭)를 가르치실 때, 그 대강의 내용을 재빨리 알려주시고는 학생들로 하여금 책상을 물리게 하고, "너희들 같으면 굴원을 할래? 어부를 할래?  양 편으로 나누어 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에 학생들의 1/3은 굴원이 되기를 원했으며, 나머지 2/3는 어부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왜 굴원의 삶이 더 나은지 혹은 왜 어부의 삶이 더 나은지.

그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나라 굴원은 충성을 다했으나 쫒겨났다.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강물에 몸을 던져 빠져 죽으려 했다.
지나가던 어부가 이를 보고 굴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지고 가버렸다.

"(나 같으면),
창랑의 물이 깨끗하면 깨끗한대로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더러운대로 발을 씻겠소이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당시 저는 굴원의 삶을 택했었습니다.

세월이 얼마 흐르지 않아 저는 어떤 일로 스승께 편지를 부쳤습니다.
"예전에 스승께서 어부사를 가르치셨는데, 지금 이 세상에서 굴원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부로 살아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저는 그 분의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서 다시 그 분을 만날 일이 생겼는데, 선생님은 저를 만나자 마자 학교에서 발간된 잡지를 보여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때 내가 너에게 답장을 보냈었다.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 왔기에 지금에서야 보여주게 되었구나. 한 번 읽어 보아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인 즉슨, 한마디로 말해, "모든 것이 다 네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라는 것 !
사실 그 답변은 당시로서는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다시 만난 기쁨에 파묻혀 그저 그렇게 스쳐 지나가 버렸습니다.

비록 메시지는 스쳐지나갔지만 그 분과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또 세월이 흘러 친구들 사이에 호를 짓는 것이 유행이던 때, 한문 선생님이시고 하니 멋진 이름을 지어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그분께 청하니, 흔쾌히 하나를 정해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다소 당위적으로 주어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과 달리, 호라는 것은 여태까지 나의 삶이 반영된 이름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기에,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필명이니 아호니 하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혹의 나이 즈음 접어 들면서 세상의 유혹을 떨치게 될 때, 하나쯤 가져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하나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如雲

같을 여, 구름 운
구름같은 놈.

스승께서 사랑하는 제자의 삶에 대해 심사숙고해 보시고 지으신 이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혹시나 하여 찾아보니, 그 원전이 공자님 말씀 중 하나인 듯 싶었습니다.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의롭지 않게 부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

거의 누구나 부귀를 꿈꾸고 있을찐대, 스승께서는 저에게 "의롭지 않게 부귀를 쫒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이름을 지어 주셨으니, 참으로 촌철살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후로 하루는 스승께 아니 왜 저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주셨냐고 항변 아닌 항변을 하게 되었는데, 스승은 오히려 저에게 책을 한 권 권해주시며, "그 거나 읽어 보거라" 하셨습니다.

그 책이 바로 "부생육기"입니다.

부생육기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별도로 하기로 하고,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다가 창랑지수와 관련된 귀절을 다시 보게 되었고 창랑정 옆 아취헌이란 곳을 찾아가게 되었으며, 마침내 스승께서 오래 전 답장을 통해 알려주셨던 가르침에 대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굴원과 같은 삶 vs. 어부와 같은 삶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을 맞으며 살고 있습니다.

굴원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어부처럼 살 것인가?

어떤 이는 굴원처럼 자신의 원칙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고,
다른 이는 어부처럼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이는 너무 깨끗한 척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다른 이는 너무 되바라졌다고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취헌은, 우리가 굴원이 되었든, 어부가 되었든, 결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랑지수의 문제는 우리가 해야 할 수많은 선택 중 가장 근본적인 선택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굴원? 아니면 어부?



여운








by 여운 | 2008/12/24 06:3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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